난 유망한 권투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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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문제아로 살아온 내가 유일하게 의지한 곳이 권투였다. 프로에서 막 3전을 쌓을 무렵 한 여자를 알게 됐다. 선천적으로 눈이 불편한 아이였다. 순박하며 선한 모습에 마냥 끌렸다.
그녀에게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밤낮없이 훈련에 몰두했다. 당장 몇십만 원 채 안 되는 상금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
프로 복서의 길은 참 고단했다. 협회의 횡포와 파벌 싸움에 어떻게든 살아남아 경기에 승리해야 했다. 질 때도 있었지만, 다행히 이길 때가 더 많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회복실에서 숨죽여 울던 내게 그녀는 눈을 뜨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나 괜찮아 울지 마." 스물두 살, 겨울의 기억이다.
인생이 매번 그렇듯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합 중 십자인대와 반월상연골판이 파열돼 선수를 그만둬야 했다. 스텝을 살린 아웃파이팅이 강점인 내게 치명적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통사고까지 당해 영구 장애를 입게 된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기에 보내야 했다. 흔히들 사랑하는데 왜 떠나느냐 반문하지만, 사랑하니까 떠나는 거다. 그게 이유다.
그 이후 내 삶은 철저히 망가졌다. 헤어진지 수십년 흘렀어도 아직 그녀만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떠난 건 후회 없다.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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