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틸라=광개토=황금씨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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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틸라가 유목제국 최초의 대칸이자.
신정합일을 이룬 최초의 왕이자 신.
아틸라 = 광개토대왕 = 탁발규 = 황금씨족의 시작
훈족 대장군 파견으로 통치 및 왕자 공주 데려와서 키움
공주는 아틸라 부인으로 편입됨
아틸라와 서로마 공주 사이에 자녀, 아틸라와 동로마 공주사이에 자녀, 아틸라와 고트족 족장 사이에 자녀
이 중에 막내 아들이 샤먼들의 선택을 받았고, 중앙아시아 쪽에서 고구려와 훈족 세계를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했다고 봄.
중앙아시아에서 백훈족이 출몰하는데, 백마를 탄 훈족이라고 들리웠지
그리고 이 시기 서로마 황제 발렌티니아누스3세와, 동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2세
아들 딸내미는, 역사에 서술된 바에 의하면 키가 180 이상에 존나 잘생기고 예뻤다고 나옴.
심지어 고트족에게 팔려갔다가 돌아온 공주가 , 왕자와 재혼 할 정도의 미모 였음
이 시기 테오도시우스 2세가 450년경에 암살을 당하는데
이게, 아들 딸내미가 다 훈족에 가 있으니, 공물을 계속해서 보낼 처지에 처하니까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자체적으로 쓱싹한것 같음
그리고 마르키아누스가 나오는데
서로마에 마요리아누스라는 황제가 있음.
근데 마요리아누스를 그리스 발음식으로 하면 마르키아누스고
그리스발음인 마르키아누스를 라틴어로 하면 마요리아누스임
이게 합리적 의심이 될 수 밖에 없는게
457년 마르키아누스가 퇴임하고-> 서로마에 3개월뒤 마요리아누스가 등장함
아들내미 아니면 본인인걸로 추정됨.
451년 카탈라우눔 전투가 451년이 아니라 그 이후일 가능성을 추론할 수 밖에 없음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가, 마지막 로마인이라고 가르치지만
실상은 훈족에서 자라서 아틸라 아들들이랑 안다 맺고 큰 아들이라
사실상 훈족의 로마 속국 대장군 위치가 적당함.
아에티우스가 455년 발렌티니아누스에게 뒤지고, 반달왕국이 로마를 약탈함.
사실 발렌티니아누스가 반달왕국을 훈족을 몰아낼 포에데라티로 봤을 가능성이 충분함.
근데 반달왕국이 와있을땐 이미 발렌티니아누스 3세가 암살당해있었고.
덩달아 훈족의 북 이탈리아 침공이 이때쯤인 것으로 예상됨
여기서 레오라는 교황이 등장하는데, (이 시기 이후 등장한 동로마 황제 이름도 레오임...)
레오라는 교황이 사실상 왕을 대신해서 (신권지배) 중간에서 모든 교섭을 마무리 지음.
그리고 나오는 황제가 아비투스 인데, 아비투스는 갈리아 지방에 최고 권력자였고.
그 이후에 마요리아누스 동로마 군대와 카탈라우눔 전투가 펼쳐진 것으로 보임
즉 카탈라우눔 전투는 마요리아누스(마르키아누스)가 서로마 황제와 동로마 황제를 동시에 한 인물과
아틸라의 전쟁이고, 이 과정에서 아틸라가 사망했지 않을 까 싶음.
즉 결론은 뭐냐,
딱 보면 알겠다시피, 발렌티니아누스 아들 딸내미는 서로마의 우호적일 수 없고
테오도시우스2세 아들 딸내미도 동로마의 우호적일 수 없다.
내가 보기엔 발렌3세 아들이나 딸내미랑 결혼한 아틸라 아들이 서로마 지역에 일부를 지배했고,
테오도시우스2세 아들이나 딸내미랑 결혼한 아틸라 아들이 트라키아 지역과 헝가리 지역을 지배했고,
이들간에 내전식으로 사건이 진행된거고,
결국 에르낙( 아틸라의 막내아들) 과 결혼한 동로마 처자? or 서로마 처자이
백인 기병대를 다수 데리고 동진해서 만든 나라가
바로 신라와 페르시아임.
그리고 동로마랑 혈통으로 이어져있으니,
동로마 신라 페르시아는 서로 왕족끼리 결혼했으며, 실크로드가 이 시기 확립된거라고 볼 수 있다.
요약
(아틸라가 침략해서 아들 딸내미 대려감
아들은 지 딸이랑 결혼시키고, 공주는 지 아들이랑 결혼 시켜서
대립 왕 세움,
왕 권 지 핏줄로 교체
그래서 모든 유럽왕가와 동방 왕가는 황금씨족이라고 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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