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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손익계산] ② 4년간 美에너지 1000억달러 구매…韓 남은 과제 '가격·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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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스핌] 김기랑 기자 = 최근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우리 정부가 향후 4년간 총 1000억달러(약 140조원)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를 수입하기로 합의한 데 대해, 에너지 업계와 전문가 사이에서는 '선방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연간 250억달러 수준은 지난해와 비교해 소폭 증가한 규모로, 우리 측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에너지 다변화 성과를 얻어냈다는 분석이다.

다만 중동산보다 저렴하게 도입할 수 있을지 여부와 물류 비용을 줄이기 위한 미국 내 태평양 연안 터미널 확보 등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만약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거나 운송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면 오히려 조달 비용이 늘어날 수 있어서다. 정부로서는 실질적인 경제 이익까지 확보해 낼 수 있는 정교한 후속 협상이 필요한 상황이다.

◆ 한미 에너지 협상 긍정 평가…"실현 가능성 크고 수입선 다변화 효과도"

2일 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30일(현지시간) 미국 현지에서 타결한 미 정부와의 관세 협상에서 향후 4년 동안 미국산 에너지 1000억달러를 수입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 해당 기간 동안 미국으로부터 액화천연가스(LNG)를 비롯한 기타 에너지 제품을 구매해야 한다. 연간 평균으로 보면 250억달러 수준이다.

지난해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총 232억달러 규모의 에너지를 사들였다. 품목별로는 ▲원유 142억달러 ▲액화석유가스(LPG) 45억달러 ▲LNG 31억달러 ▲석유 8억달러 ▲석탄 6억달러 등이다. 정부는 이 중 LNG를 중심으로 에너지 수입을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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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평균 250억달러는 지난해 에너지 수입액(232억달러)을 기준으로 단순 비교해 보면 18억달러(7.7%) 많은 수준이다. 수입 규모가 예년 대비 급격히 늘어난 것이 아닌 만큼, 정부와 에너지 업계는 우리 측이 무리한 부담을 짊어지지 않도록 현실적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보고 있다. 기존 수입 규모를 일부 확대하는 것만으로도 약속을 충분히 이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용범 대통령 정책실장은 지난 31일 브리핑에서 "원유와 LNG, LPG, 일부 석탄 등을 포함한 수입 약속이지만 통상적으로 수입해오던 규모와 큰 차이가 없다"며 "일부 중동산 에너지를 미국산으로 대체하는 수준이며, 우리 경제 규모에서 충분히 감당 가능한 액수"라고 설명했다.

에너지 업계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특히 LNG를 중심으로 수입을 확대한다는 점에 대해 실현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업계에 따르면 LNG는 전담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를 통해 수입량을 유연하게 늘릴 수 있는 자원이다. 가스공사가 이미 미국산 LNG 수입에 대한 여러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만큼, 기존 계약을 연장하거나 물량을 늘리는 것만으로도 수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원유는 민간 기업인 각 정유사들이 시장 상황과 가격 조건 등을 고려해 수입하기 때문에 정부가 마냥 도입을 독려한다고 해서 규모를 키울 수는 없다"며 "LNG는 정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조절할 수 있고, 단가도 비교적 안정적이라 가장 쉽게 물량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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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시추 현장 [사진=블룸버그]

에너지 다변화 측면에서도 이번 합의는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특정 지역에 집중된 수입 구조에서 벗어나 공급선을 보다 폭넓게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한국의 의존도가 높은 중동산 에너지는 국제 정세에 따라 수급이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큰 만큼, 이에 대한 대체 수단으로 미국산 LNG와 원유를 일정 부분 확보해 두는 것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의미 있는 조치라는 평가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작년에 한국이 카타르와 오만 등에서 수입하는 LNG 900만톤(t)에 대한 계약이 끝났는데, 이를 미국과 중동에서 나눠서 수입하면 된다. 우리 입장에서는 특별히 달라지는 것 없이 오히려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효과를 누리게 된 것"이라며 "그동안 미국산 LNG를 늘리려고 계획 중이었기 때문에 이번 협상은 굉장히 선방한 결과"라고 해석했다.

◆ 가격 협상·물류 구조 개선 필요…후속 협상으로 韓 실질 이익 이끌어야

다만 관건은 중동산 에너지와 대비한 미국산 에너지의 '가격'이다. 현재 한국은 수입 에너지의 대부분을 중동 지역에서 사들이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은 전체 원유 수입의 약 70%, LNG 수입의 약 25%를 중동산으로 채웠다. 원유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에서, LNG는 카타르와 오만 등에서 주로 수입한다.

만일 미국산 제품이 중동산보다 비싸게 들어올 경우 오히려 경제적 이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원유는 국제 유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LNG는 장기 계약 구조에 따라 고정 단가로 수입되는 경우가 많아 단기 시장 가격에 비해 비쌀 수 있다. 미국산 에너지의 공급 안정성과 다변화 효과 등은 장점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단가 경쟁력이 확보돼야 기업과 국가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관해 유승훈 교수는 "협상 결과 자체는 바람직하지만, 사실 정말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려면 미국산 에너지를 중동산보다 싸게 들여와야 한다"며 "중동산 LNG를 매개로 해서 미국과 가격 협상을 잘 해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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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파나마 운하로 들어오는 컨테이너선. (제공=로이터) 2020.06.22 [email protected]

또 다른 과제는 '물류'다. 현재 미국에서 한국으로 LNG를 수송할 때는 주로 동부 멕시코만 지역의 터미널에서 출항하는데, 이들 선박의 주요 항로는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태평양 경로다. 하지만 LNG 선박은 규모 등의 문제로 파나마 운하 통과가 어려워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경유하는 항로를 사용해야만 한다. 이 경우 운송 일수가 약 2배 늘어날 뿐더러 소모 비용도 크게 증가하게 된다.

따라서 미국 서부이자 태평양 연안 지역에 LNG 수출 전용 터미널이 마련될 필요성이 제기된다. 태평양 측 항로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 수송 거리와 일수를 크게 줄일 수 있고, 그만큼 운송 비용 절감과 공급 안정성 확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렇듯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를 현실적인 이익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얼마에 사올 것인가'와 '어떻게 들여올 것인가'라는 두 가지 과제를 풀어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로서는 에너지 수입 확대에 따른 부담을 최소화하고 실질적인 경제 이익을 확보하려면 가격 협상과 함께 물류 구조 개선을 반드시 병행해야 하는 셈이다.

유승훈 교수는 "미국이 서부로 파이프라인을 건설해주면 우리는 훨씬 빠른 시간과 적은 비용으로 미국산 LNG를 수입할 수 있다. 이 터미널 건설을 제안하는 게 주요한 협상 과제가 될 것"이라며 "아직 해결해야 할 여러 과제들이 남아 있지만, 우리 정부로서는 결코 손해를 입은 결과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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