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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악성민원에 멍드는 공직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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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스핌] 이정아 기자 = "민원 대응이요? 하루 종일 들어 오죠. 내선 번화로 걸려 오는 전화는 무조건 받게 돼 있어요. 민원인의 전화를 받다 보면 오전이 훌쩍 지나갑니다. 오후에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일상이 반복되니 결국 진짜 제 일은 야근하면서 하게 됩니다. 민원 부담만 줄여줘도, 대통령이 말한 공직사회 '가짜 일 줄이기 프로젝트'는 성공할 거예요."

민원 대응 상위 부서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김 모 씨의 푸념이다. 김 씨는 중앙정부에서 근무하며 여러 일을 겪었다고 했다. 그는 "이전에는 부처 홈페이지에 직원 실명이 그대로 노출되면서 민원인이 이름을 가지고 협박하는 사례도 있었다"며 "악성 민원인에 한 번 걸리면 그 부서를 이동하기 전까지 지옥에서 사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기자가 19개 정부 부처의 조직도 익명화 현황을 취재하며 만난 공무원들은 "공무원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모든 안전수칙은 피로 쓰여진다'는 말이 있다. 공직사회에서 공무원 보호가 중요한 의제로 등장하게 된 계기도 악성 민원에 시달린 공무원들의 극단 선택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2507062346165700.jpg경제부 이정아 기자

국민권익위가 지난해 특이민원 권역별 워크숍에 참석한 총 393개 공공기관 민원업무 담당 공직자 109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특이민원 실태조사를 보면, 설문 응답자의 86%가 최근 3년간 특이민원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들이 경험한 특이민원인 수는 총 5213명으로, 1인당 5.5명의 특이민원을 경험한 셈이다.

특이민원 유형으로는 상습·반복적인 민원 청구가 70.9%로 가장 많았으며 그 외 폭언(63.1%), 과도한 정보공개 청구(56.0%), 부당요구·시위(50.0%)도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는 민원 제기 후 처리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 정보공개청구·소송 등 이른바 '꼬리물기' 식으로 공무원을 괴롭히는 행위가 적잖게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공무원 박 모 씨는 "정부에서 악성민원을 특이민원으로 명칭을 변경해 지칭하고 있는데, 악성민원은 악성민원"이라며 "생계와 연결된 복지·고용서비스를 처리하는 부서에 근무할 때 살해협박을 받아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공황까지 생겼다. 악성민원인들에 대한 처벌 규정이 생겨야 한다"고 강도 높게 주문했다.

실제로 몇 해 전 A 부처에 앙심을 품은 한 민원인은 기자를 사칭해 A 부처를 방문하고 흉기를 소지한 채 난동을 부렸다. 이 민원인은 자신의 말을 공무원들이 무시한다고 생각해 기자 명함을 만들어 기자실까지 방문하는 기행을 벌였다. 민원인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긴 경비 직원의 도움으로 흉기는 현장에서 압수됐지만, 공무원들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악성민원 근절도 중요하지만, 더욱 신경 써야 할 건 회사(기관)의 대처다. 악성민원인들을 마주한 공무원들이 가장 서러웠던 건 바로 '나 몰라라' 식의 소극적 대처다. 실태조사에 참여한 공무원의 88.9%는 악성민원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안팎으로 보호받지 못할수록 대민원 서비스의 질은 점점 하락한다. 세계가 칭찬하는 한국의 빠른 행정 서비스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더 늦기 전에 강력한 보호 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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