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국가대표 AI 모델 구축 넘어 생태계 조성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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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스핌] 이경태 기자 = 정부가 2000억 원을 쏟아부어 추진하는 독자 파운데이션모델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네이버클라우드, LG경영개발원 AI연구원, 업스테이지, SKT, NCAI 등 5개 정예팀이 선정됐다. 하지만 산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단순한 모델 개발을 넘어선 근본적 질문이 제기된다. 바로 좋은 모델을 만드는 것과 모든 사람이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이같은 얘기는 엔비디아의 성공 비결에서 찾을 수 있다. 엔비디아는 단순히 뛰어난 GPU를 만든 것이 아니라, CUDA 생태계를 구축한 데 있다. 바이오헬스 솔루션부터 자율주행까지, 개발자들이 직접 만들어 쓸 수 있도록 다양한 도메인,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생태계를 조성했다.
이런 측면에서 LG의 엑사원(EXAONE)도 화장품 신소재 발견, 병리 데이터 분석, 석유화학 공정 최적화 등 실제 산업 도메인에서의 혁신을 통해 가치를 증명하면서 생태계 조성에 힘을 쏟고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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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태 CTO |
다만 여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정부가 만든 모델을 모든 사람이 활용할 수 있게 할 것인지, 네이버나 SKT 같은 특정 기업의 플랫폼에만 제한될 것인지에 대해 걱정이 이어진다.
이번에 선정된 기업들은 나름의 강점을 갖고 있다. LG는 컨슈머 시장과 제조업, 네이버는 검색과 지식 데이터, SKT는 통신 인프라 등의 도메인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단일 기업이 모든 분야의 전문성을 갖출 수 없다는 점이다. 진정한 파운데이션모델이 되려면 다양한 산업 도메인의 데이터와 전문성이 융합되어야 하는데, 현재 구조로는 각 기업이 자신의 영역에만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가장 현실적인 고민은 '어떻게 공개하고 모든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무료로 쓸 수 있게 할 것인가'이다. 정부 예산으로 개발된 모델이라면 당연히 전 국민이 활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API 제공 방식을 따른다면 무료로 제공할 것인가, 유료 모델로 내놓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뒤따른다. 학습 데이터와 파생 데이터를 어느 수준까지 공개할 것인지도 명확하지는 않다.
지속적인 개선을 위한 피드백과 업데이트는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메타의 AI 모델인 라마(Llama)처럼 오픈소스로 공개하되 상업적 수익구조를 만드는 방식이 있긴 하다. 이럴 때 수익만 쫓게되는 분위기로 기업이 방향을 선회할 수도 있다.
결국 해결책은 모델만 구축하는 것에서 찾을 수는 없다. 'K-AI'의 생태계가 구축되도록 전방위적인 대응안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개발자의 접근성을 확보해야 한다. 허깅페이스(Hugging Face)처럼 전 세계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모델을 활용하고 개별적으로 특성화시킬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교육기관 무료 라이선스,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 개발자 커뮤니티 육성 등이 필요하다.
범용 모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금융, 의료, 제조, 교육 등 각 산업별 특성에 맞는 파생 모델과 솔루션 개발을 위한 도메인 전문가와의 협력 체계도 구축돼야 한다.
파운데이션모델은 '처음의 모델'이 아니라 '지속적인 버전 업데이트'를 필요로 한다. 사용자 피드백, 새로운 데이터, 기술 발전을 반영한 업데이트가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런 방향으로 생태계를 조성해나갈 때 결국 시선은 예산에 모인다. 현재 2000억원은 모델 개발에 집중돼 있지만, 진정한 생태계 조성을 위한 예산이 수반돼야 한다.
API 인프라 구축 및 운영비, 개발자 지원 프로그램 운영, 산업별 맞춤화 연구개발, 교육 및 인력양성 프로그램,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 활용 지원 등 함께 반영해야 할 예산이 수두룩하다.
정부가 모델 개발에만 집중하고 생태계 조성 예산을 소홀히 한다면, 결국 '훌륭한 기술을 만들었지만 아무도 쓰지 않는'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또 폐쇄적인 플랫폼화의 위험을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 각 기업이 이후 수익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생태계를 구축하려 할 경우, 한국의 AI 생태계가 여러 개의 고립된 섬으로 분할될 위험도 있다. 네이버는 네이버 플랫폼에서, SKT는 SKT 서비스에서만 활용되는 구조로 고착화될 수 있다.
대기업 중심의 컨소시엄 구조에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접근성이 제한될 수 있다. 실제로 업스테이지 같은 스타트업이 선정된 것은 긍정적이지만, 전체 생태계에서 이들의 역할과 지원 방안이 더 구체화돼야 한다.
더구나 '글로벌 상위 AI 모델 성능의 95% 달성'이라는 목표도 중요하나, 성능만으로는 생태계 경쟁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오픈AI의 챗지피티(ChatGPT), 구글의 제미나이(Gemini)와 경쟁하려면 기술력뿐만 아니라 사용자 경험, 접근성, 활용도에서도 우위를 점해야 한다.
독자 파운데이션모델 성공 여부는 좋은 모델 구축이 아니라, 모두가 모여 좋은 것을 만들어 활용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그렇기 때문에 내년도 정부 예산 편성 과정에서 생태계 조성을 위한 추가 투자 예산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 모델 개발 못지않게 API 공개, 개발자 지원, 산업별 맞춤화, 교육 인프라 등에 대한 체계적 투자가 이뤄져야만, 한국의 독자 파운데이션모델이 진정한 'K-AI 플랫폼'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AI를 모두가 쓰도록 할 때 한국의 AI 경쟁력이 쌓여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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