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25시] 예산철 왕좌는 여전히 '기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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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스핌] 이정아 기자 = 예산당국인 기획재정부가 내년도 예산안 편성 막바지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관가에는 이맘때쯤이면 "예산실에 찍히면 큰일 난다"는 농담이 돌곤 합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기재부 힘 빼기 논의가 한창이지만, 올해도 예산실의 '왕좌'는 요지부동인 모양새입니다.
이달 들어 기재부가 자리한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에서 가장 흔한 풍경은 보고서를 들고 기재부를 방문한 다른 부처 공무원들입니다. 이들은 예산실 밖 테이블에서 대기하며 예산실을 어떻게 설득할지 논의합니다.
한 정부 부처 A과장은 "기재부 예산실의 특징은 '원맨(1인) 시스템'"이라며 "예산실 과장 한 명이 담당하는 부처의 모든 예산을 들여다보는데 그게 말이나 되냐"며 헛웃음을 쳤습니다. 그는 "숫자에만 매달리다 보니 꼭 필요한 사업이 잘려 나가기 일쑤"라고 토로합니다.
실제로 기재부 예산실은 과장 한명이 담당하는 부처의 모든 사업과 일반회계·특별회계·기금을 들여다봅니다. 상황이 이러니 규모가 작은 소규모 사업은 빨간 줄부터 그어지기 일쑤입니다.
물론 기재부 예산실은 '탑다운(Top-Down)' 예산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탑다운 예산이란 정부가 예산안을 편성할 때 중앙정부가 총액을 먼저 설정하고, 그 안에서 세부적으로 예산을 조정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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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ChatGPT] |
그러나 관가의 이야기는 조금 다릅니다. 기재부의 '탑다운' 예산은 기재부가 총액을 정하고, 세부 예산도 기재부가 정하는 일종의 '하향식' 예산 제도라는 뜻입니다. 부처의 자율성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정부 부처 B 과장은 "새 정부가 들어서면 기재부 예산실의 행태가 바뀔 줄 알았는데 괜한 기대였다"며 "부처 장관의 역점으로 추진하는 사업도 예산실 앞에서는 통과되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고 귀띔했습니다.
모든 부처가 울상을 짓는 건 아닙니다. 올해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나름의 성과를 얻었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대폭 삭감된 연구개발(R&D) 예산(29조6000억원)이 이재명 정부 들어 사상 최대 규모인 35조3000억원으로 확정됐기 때문입니다.
과기부 한 관계자는 "R&D 예산이 논란이 된 만큼 어느 정도 원복될거라 기대했지만, 10조원 가까이 뛸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며 놀라워했습니다. 관가에서는 "올해 예산철 승자는 과기부"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고 있습니다.
사실 이재명 정부 출범 초기에는 기재부 예산실이 쥔 칼자루가 무뎌질 거란 예측이 있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기재부의 권한을 분리해 예산기능은 기획예산처로, 그 외 기능은 재정경제부로 나누는 조직개편안을 공약으로 세웠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내년도 예산안 작업이 끝나가는 지금도 각 부처는 예산실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기재부 내부 안에서도 예산실에 대한 불만이 나옵니다.
한 기재부 관계자는 "타 부처와 협력 사업을 추진할 때도 예산실 협조를 받아야 하는데, 예산을 따오는 과정에서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는 "예산실은 기재부 내에서도 외딴섬처럼 분리돼 있다"며 "예산 편성에 대한 근본적인 마인드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재부 예산실을 겨냥한 비판은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산실 권력은 굳건했고, 논의는 늘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필요한 것은 구호가 아닌 변화입니다. 예산 편성이 진짜 '국민의 예산'이 되려면 방향 전환이 불가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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